관악산 육봉능선 산행 - 해피 마운틴

3년전인가 오르려던 육봉능선을 그때 관양능선으로 잘못 오르던 관계로  이번에 다시 다녀왔다.
9월 17일 과천정부창사역 6번 출구에서 11시에 만나 시작한 등산은 오후 4시에 끝났다. 약 9Km, 육봉능선은 초보자는 좀 힘든코스다.
6번 출구보다 7번 출구가 좀더 가깝다. 엘리베이터로 오르는게 편하다. 계단 엄청길다.
과천은 언제 와 봐도 도시의 번잡함에서 조금은 벗어난 전원풍광의 도시란 느낌을 받는다. 넓고 한가했다. 
청사 앞의 넓은 운동장을 지난다. 억새가 평화롭게 자란 들판을 지나  1키로 정도 걸어 국사편찬위를 지나고 화학융합시험연구소와 공무원연수원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가면 등산로 시작점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꺽어져 20여분 들어가 마당바위를 지나 조금 더 가면 문원폭포가 모습을 들어낸다. 그런데 물이 없어 폭포인지 알기 어려웠따. 
요기서 길을 잘 찾아야 한다. 왼쪽으로 꺽어져 상급자 능선코스쪽으로 간다.
능선길을 오르다 보면 드디어 암릉구간이 나타난다. 조금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도전한다. 아래로 과천시 그림이 펼쳐진다. 위에 보이는 봉우리가 육봉의 사작인 제 1봉이다. 아슬아슬하다. 우회로가 없어 바위를 릿지로 올라야 한다.
1봉을 오르기 시작한다. 아예 스틱을 접고 두손 두발로 오르는게 편하고 안전하다. 길지는 않지만 슬랩 구간의 경사가 상당했다.
코끼리바위상 앞에서 한 컷, 요거도 봉우리에 들어가는거 같다. 2봉인가??
3봉인 국기봉에 오르다. 관악산에는 국기봉이 여러개 있다. 아마 무슨  표지의 역할을 하는 듯하다.
위험한 곳은 우회하라는 경고판이 곳곳에 서 있다. . 장비가 있는 사람들은 자일 연습장소로 사용하는듯 했따.
오봉인가 여기도 위험해서 우회하는 코스가 있다. 바위가 크지는 않지만 경사가 상당했다. 육봉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연주암쪽에서 능선을 따라 오는 길이 조금 수월해서 많은 사람들이 여기까지 왔다 내려간다고 한다. 우리처럼 육봉 능선쪽으로 올라 온 사람은  드물었다.
연주암쪽으로 가다  통신탑 못미쳐 계곡길로 하산했다. 좀 이른 단풍이 몇 군데 보인다. 한참 가다보니 무너미 고개쪽으로 가는듯 해서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어 부지런히  걸어 서울대 공학관쪽으로 하산하다. 오늘 좀 뻑세게 산행했다. 관악산도 참 멋진 산이란걸 다시금 느낀다.   


고요한 폭풍, 스피노자 - 책속의 생각

  니체에 이어 스피노자를 읽었다. 참 맑고 경건하게 삶을 사랑한 철학자라 생각된다. 특히나 요즘 산을 자주 다니며 천지간 자연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 참 신선하다고 느껴진다. 스피노자는 신은 하늘 어딘가에 세상과 동떨어져 군림하는 초자연적이고 초월적인 인격체가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모든 자연 만물을 생성시키는 '자연' 자체라 보았다. 따라서 자연은 더 이상 인간의 지배를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이 자연의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 어떻게 우리가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사물의 참된 원인_신_을 알아낼 수 있을까?  스피노자는 신을 '능산적 자연'으로, 자연 만물을 포함한 모든 양태를 '소산적 자연'으로 부르는데 '능산적 자연'은 모든 자연 만물을 산출하는 원인으로서의 신적 본성, 즉 속성을 말하고 '소산적 자연'은 신, 즉 능산적 자연에 의해 산출된 결과로서의 자연 만물, 즉 양태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신은 자연 만물 바깥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만물에 내재하는 원인, 즉 초월적 원인이 아니라 내재적 원인이다. 이로써  신은 자연 만물을 산출하는 원인이면서 동시에 그 결과인 자연 만물로 이루어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스피노자에게는 신이 곧 자연이었다.

 세상은 신이 임의로 즉, 자유의지로 창조해 낸 것이 아니다. 신이 존재하고 활동하는 방식은 지유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신적 본성에 따른 것이다. 신은 무한한 능력으로 다양한 속성에 따라 자신을 변용시킨다. 그러한 변용의 결과들이 자연 만물이다. 스피노자가 보기에는 스콜라 철학자들이나 데카르트는 신을 규정할 때 그 본성 보다는 신에 대해 자신들이 상상하는 것을 앞세웠다. '전지전능', '영원함', '완전함', '최고선' 등의 용어가 그것이다. 그들은 신이 최고로 완전한 존재이므로 필연적으로존재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신의 존재에 대한 이런 방식의 증명은 신의 본성이 아닌 특성에 기반하고 있을뿐이며 인간적인 정서를 신에게 부여하여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신은 ' 자신 안에 있으면서 자신에 의해 이해되는 것', 즉 '자기원인'으로서 무한히 다양한 속성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자연 안에 존재하는 것은 신이 양태화(modifivation)되어 존재함을 뜻하고 이는 자신을 무한히 다양한 양태로 표현하는 신의 능력이 펼쳐진 것을 의미한다. 양태들의 고유한 능력은 다른 양태들과의 관계속에서만 표현될 수 있다. 양태들은 자신의 고유한 능력의 정도에 상응하는 외연적 관계를 갖지 않고서는 졀코 실존하지 못한다. 

 도덕(moral)과 윤리학(ethics)은 좋은 것과 나쁜 것, 올바른 것과 그른 것에 대한 가치규범을 가리킨다. 이 둘의 차이점은 도덕이 개인의 내면세계를 향해 양심과 죄책감에 호소하는 일종의 초월적 계율을 지칭한다면, 윤리학은 인간이 다른 개체들과 맺는 관계속에서 고려해야 할 내재적 규칙을 지칭한다는 점이다.  스피노자가 우리에게 제안한 것은 도덕, 그리고 선악조차도 넘어선 양태들의 윤리학이다. 도덕이 선악을 잣대로 무조건적인 명령에 의해 강제되는 당위의 법률이라면, 윤리학은 특정한 조건 아래서 좋음과나쁨을 파악하는 관계들의 규칙들이다.

 인간의 정신과 신체가 공통으로 따르는 법칙은 '힘' 또는 '능력'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미 특정한 힘을 표현하고 있다. 그들에게서 표현되는 '힘'이 다름아닌 '욕망'이다. 따라서 인간의 정신과 싵체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사유와 연장의 속성으로) 동일한 힘 또는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도, 걷는 것도 모두가 '힘'의 표현이자 '욕망'의 표현이다. 모든 양태는 제각기 신의 능력을 표현한다.  양태들은 신의 일부로서 신의능력을 나누어 가지며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모든 사물에는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능력이 속하는데 스피노자는 이를 가리켜 '코나투스'라 부른다. 신의 능력은 'potentia'와 'potestas'로 구분하는데 포텐시아는 사물이 지니는 내적이고 잠재적인 힘으로 모든 사물이 존재하거나 활동하기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사물의 본질이다. 포테스타스는  사물들이 지니는 특정한 변용 능력을 뜻한다. 이는 현실 속에서 구체화되고 대상화 될 수 잇는 힘으로써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실행 가능한 객관적인 힘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대상을 지배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법적.정치적 힘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정념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나 우리를 자유로운 존재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능력, 욕망을 긍정하는 것이 필요하다.자신의 능력이 크거나 작다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능력이 확장되고 있는가, 축소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기쁨을 추구하고 슬픔을 멀리하라' 자유로운 인간은 무엇이 자신에게 유익한 것인지 잘 알고 있는사람이다. 이들은 기쁜 마주침을 조직하고자 노력하며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다양한 관계를 맺고자 노력하며 자신의 신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자극받는데 적합하도록 만들어 간다. 자유로운 인간은 더 이상 외적인 운에 의존하지 않는다.기쁨을 지속적으로 증대시킬 방안에 주목하라. 좋은 음식과 맑은 공기, 적절한 운동과 이런 저런 예술활동을 즐기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 유대를 맺고 우정을 강화시키는것만큼 유익한 것은 없다. 지복은 덕에 대한 보상이 아닌, 덕 그자체이다. 자유로운 사람들은 지복을 누리기 위해 쾌락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지복을 누리기 때문에 쾌락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지복이란 사후나 먼 미래에 누리게 되는것이 아니라 이미 현재의 삶 속에서 누리는 유덕한 삶이다. 우리 신체와 정신으로 하여금 수동적 정념이 차지하는 부분을 최대로 줄이고 신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능동적인 기쁨으로 우리 정신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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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긴 내용을 밑줄 그은 부분만 정리해 보았다. .
책의 구성은 아래와 같다.
1장 : 스피노자, 고요한 폭풍이여!
스피노자가 꿈꾸던 세상/ 스피노자의 생애와 사상과 영향/ 반시대적 사상가의 고독
2장 : 신은 어떻게 자연이 되는가?
신은 곧 자연/ 신과 피조물은 동일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내재적 원인으로서의 신
3장 : 신체 없는 정신과 정신 있는 신체
신체와 정신은 평행하다/ 부적합한 관념에서 적합한 관념 혹은 공통 개념으로/ 좋은 마주침과 나쁜 마주침에 대하여
4장 : 나는 욕망한다, 고로 나는존재한다
능력에 대하여/ 욕망은 인간의 본질이다/ 기쁨의 정서가 갖는 중요성에 대해
5장 : 미신 없는 종교와 공포 없는 국가
신앙과 이성은  서로에게 자유를 허락한다/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 말자/ 좋은 정치체는 자유에 대한 사랑을 제안한다
6장 : 자유로운 인간들의 덕과 지복
자유로운 인간들이 만드는사회/ 지복과 영원성에 대하여  


생각발전소 - 책속의 생각

 생각은 꽃이다. 피어나고 또 진다. 그러나 생각은 자연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생각은 기술이다. 그 이유는 생각의 방식을 우리 스스로 조율하여 생각다운 생각을 만들어 갈 수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제대로 된 생각을 키울 수 있을까? 어떤 기술을 이용하여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바르게 표현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이 책의 저자 죈트겐은 출발한다.

 부제가 '철학자에게 배우는 논리의 모든 것'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올바른 생각의 꽃을 어떻게 피울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생각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철학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는지 주의 깊게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한 '생각의 기술'은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요약된다..
스스로 생각하는 연습을 할 것, 논리적인 규칙을 어기지 말 것, 생각의 실험을 시도할 것, 정확하게 관찰허는 슴관을 기를 것, 증거를 제시할 것, 원인을 찾는 일에 부지런할 것, 권위에 의존하지 말 것, 그릇된 맥락에 빠지지 말 것, 인용과 비유와 대조 그리고 패러디를 적절히 사용할 것, 조합의 방식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 자료를 열심히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습관을 들일 것, 상대의 논점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예민하게 감지할 것, 서두르지 말고 생각의 결실을 기다릴 것 등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미 주어진 것을 잘 생각하기'의 전략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기존의 생각과는 다른 새로운 생각에 이르는 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동일한 사태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 볼 것, 상투적인 관점과는 다륹 관점의 가능성을 열거해 볼 것, 새로운 본보기를 통하여 기존의 정의에서 불충분한 점을 찾아낼 것, 기존의 용어나 개념을 새롭게 연결시켜 볼 것, 사태를 뒤집어서 반대로 생각해 볼 것 등이다. 

 '잘 생각하기' 라는 건조하고 딱딱한 주제를 저자는 다양한 출처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곁들임으로써 즐겁게 생각의 세게로 빠져들 수 있도록 안내한다. 생각의 기술은 하나같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구속돠는 일을 줄인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생각의 기술은 떠오르는 착상과 생각을 세우는데 필요한 자료들을 찾아 모으고 판단력의 날을 날카롭게 벼르도록 도와준다. 생각의 기술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해방의 힘이요, 도구인 것이다. 철학은 토론, 곧 다양한 생각의 교환을 양식으로 한다. 그 생각의 교환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책에서 소개된 일련의 기술들을 마음대로 구가하는 능력이다.그 능력에는 나름의 바람직한 태도들이 요구된다. 철학토론에서 중요한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진리란 어느 누구도 완전히 이를 수 없는 것이지만, 또 진리가 전혀 없는 사람도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서 배울울 마음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도드람산+설봉산행 - 해피 마운틴

9월 27일 이천에 있는 도드람산과 설봉산을 오전, 오후로 나눠 듀얼 산행을 실시했다. 하루, 산행 2탕은 처음이다.ㅋ
오전 9시 능곡역에서 만나 외곽도로와 중부고속도로를 달려 서이천 IC로 나와 고속도로 옆에 있는 이천 체육공원 옆으로 주차하고 산행을 시작한게 10시 50분경, 도드람산을 내려온게 1시 20분이니 2시간 좀 넘게 걸렸다. 산행거리 2.7Km
도드람산은 돈(돼지)+울음이 합해진 말로 돈울음이 도드람으로 변한건데 효자가 엄니 약초캐러 가서 낭떠러니에서 로프를  타고 내려갔는데 멧돼지 울음소리에 놀라 보니 밧줄이 끊어질듯해서 올라와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전설따라 삼천리~~ 
정상까지 700m, 좀 짧은 거리를 올라 제 1봉에 도착한다. 표지석이 조그만하게 놓여있다.
아래로 보이는 주변 풍경이 기을을 담고 있었다.
2봉, 3봉을 거쳐 정상인 효자봉에 오른다. 349m 아담한 산이다. 여기서 전망대로 이어지는 길은 사고가 많은 위험한 코스라 막아놓아 우회해야 한다.
전망대 오르는 철계단, 바닥이 철망으로 되어 있어 아래가 훤히 보여 조금 심난하다. 위에 오르니 중부고속도로가 지나는  사방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 아래 돼지굴이다.돼지가 걸려 우는 바람에 효자가 살아난...  비가 뿌리기 시작해 서둘러 하산히다. 평이한 하산코스를 내려와 SK 인재개발원 쪽으로 원점 회귀한다. 점심을 먹으러 이천으로 나가 이천 돌솥밥을  먹었는데 반찬이 정갈하니 맛있엇다. 1인분 11,000원..
점심 후 이천 설봉공원에 들럿다. 호수를 끼고 있는 진입로 부터 상당한 규모의 주민 휴식공간이자 복합문화센터였다. 설봉산이 남북으로 이천을 감싸안고 있는 모양으로 삼국시대 백제의 요충지였다고한다.
산행코스는 4개가 안내되어 있는데 우리는 2코스(5.6Km, 1시간 30분 소요)를 돌았다. 거의 대부분 짚보도가 갈려있는 얌전한 트래킹코스였다. 
설봉산성의 흔적이 약간 남아있고 봉화대도 있다.
요건 칼바위, 두 개가 서 있다. 설봉공원은 2,000년대 들어서며 이천시가 의욕적으로 조성해 논 시민공원이었다. 조형물과 휴식 벤치 등이 잘 꾸며져 잇었다. 
설봉산 정상을 거쳐 능선을 타고 화두재까지 이동하다 도재원 쪽으로 하산한다. 화두재로 내려오는 계단이 360여 개로 길었다.
도자기 엑스포, 홀스타인 전람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많이 열리는 곳이었다. 사진에 보이는곳은 도자기 체험굴이다. 아기를 데리고 가족단위 여가를 즐기러 온 행락객이 많이 보였다. 지방 내려갔다 올라오는 길에 잠시 들러 쉬어 가기 적당한 장소라 생각된다. 서울로 서둘러 올라오니 6시 20분 경, 뒤풀이를 하고 털레털레 집으로...96번 버스가 고촌에서 김포대교를 가로질러 오는 바람에 쉽게 왔다.

니체_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 책속의 생각

 이 책은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인생교과서'시리즈로 발간한 책이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 19명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등 인생의 화두라 할 수 있는 질문에 대해 각각 그들을 전공한 학자들을 통해 대답을 들어보는 의도로 제작된 책이라고 한다. 철학원서의 내용은 어렵고 또 번역본은 여러 단계를 거쳐 생각이 번지기때문에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데 수십년 한 사람의 찰학자를 전공한 학자들의 생각의 나이테를  통해 좀 더 용이하게 위대한 철학자의 사상을 접할 수 있는 기획이다.

 '권력에의 의지' 혹은 '힘에의 의지'의 철학자로 알려진 니체는 개인적으로는 그리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인류의 사상사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철학자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니체는 이성이 주도하던 서양철학의 전통을 건강한 신체와 욕망을  바탕으로 한 의지 중심의 세계로 바꾸었다. 니체에 의하면 인간도 유기체고 자연도 유기체다. 우주 전체가 유기체다. 유기체이기에 살아있는 것이며 그 생명성은 내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형성되는 '관계'덕분이다. 이 유기적 생명성을 가능하게 하는 '관계'의 정체가 바로 의지라는것이다. 즉, 항상 힘 상승과 강화의 지배를 원하고 추구하는 의지작용이다. 의지는 동사형으로 원하고 바라고 추구하고 욕망하는 '활동'이다. 그래서 의지는 늘 ' 그 이상'을, '좀 더'를 원한다. 니체는  세계 전체, 온 우주 전체가 바로 이런 의지들의 ,즉 힘에의 의지들의 거대한 관계네트워크라고 이해한다. 힘에의 의지가 활동하고 운동하며 힘겨루기 관계를 맺는 의지작용이기에 세계는 거대한 관계세계이다.  인간이라는 유기체도 힘에의 의지의 지배를 받으며 인간의 모든 면이 힘에의 의지의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성적 판단이 바로 행위로 연결되지 않음을 인다. 문제는 이성적이기를 원하는 의지가 어떻게 이성적인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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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구성은 아래와 같다.
1부 삶과 죽음
니체에 의하면 인생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삶을 위한 삶'과 '삶을 거스르는 삶'이다. '삶을 위한 삶'은 진정한 삶을 오늘에서 내일로, 그리고 내일에서 죽음 이후의 내세로 연기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진실하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삶을 거스르는 삶'은 '본능에 대적하는 삶'이다. 우리는 본능을 긍정하지 않고는 결코 진정한 인생을 살 수 없다. 본능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모습이 결정된다. 본능을 인정하고 가꾸지 않으면 결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없다.
2부  나와 우리
'나는 누구인가', 니체는 이 물음 자체를 해체 시켜버린다. 진정한 나는 존재하지도 않으며 알 수도 없다. 이제까지 나에게 덧씌워진 가상의 허울을 던져버리고 찾고자 하는 진정한 나는 또 다른 허상에 불과하다고 폭로한다. 니체는 '영혼', '정신' 또는 '나'로 불리는 인간의 본질을 부정한다.  우리는 소위 말하는 진정한 자아를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를 끊임없이 해석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갈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이러한 해석이 자신의 존재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3부 생각과 행동
모든 도덕과 윤리는 한결같이 욕망의 통제와 절제를 요구한다. 왜 우리는 삶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욕망과 충동에 대해 이처럼 이중적 태도를 취하는것일까? 니체에 의하면 욕망과 충동의 인정이 그에 대한 부정과 억압보다 훨씬 더 유용하다. 우리가 욕망을 이성적으로 통제한다고 말하지만 이 경우에도 실은 이성이 다른 욕망, 즉 욕망을 통제하고 싶다는 욕망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삶의 자연스러운 충동을 긍정하면서 동시에 욕망을 절제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4부 현실과 초월
'모든 신은 죽었다.'  니체가 선언하는 '신의 죽음'은 신앙인들의 무게중심을 신에게서 인간으로 되돌리려는 성찰이며 인간 안에 내재하는 신성을 주목하자는 권유이자 동시에 인간 자신과 세계를 사랑하게 만드는 신 개념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종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철학적 물음이자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성의 회복을 위한 철학적 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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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책을 처음 구입하면서 그간 니체 책을 몇 권 읽으면서도 '힘에의 의지' 라는 개념이 너무 막연했기 때문에 좀 더 집어 보고자 하는 생각이엇다. 그런데 실타래를 잘 풀어가다가 끝에서 또 엉켜버렸다. 결국 이성 중심의 세계관에서 살과 뼈의 인간 중심의 건강한 세계와 운명의 사랑으로 수렴되는데 그래도 니체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타협하고자 했던 본질적인 상대는 있지 않았을까, 그것이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든  헤겔의 세계정신이었든 어떤 방향성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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