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가의 탄생 - 책속의 생각

 원 제목이 ' The life and times of Jacob Fugger' 로 되어 있는 이 책은 15세기에서 16세기 초반에 걸쳐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를 배경으로 성장한 금융자본으로 당시의 종교와 정치를 압도한 야코브 푸거에 대한 이야기다.

 푸거는 막시밀리안 1세와 카를 5세 황제 등, 신성로마제국과 함스부르크 가문에 금융자본을 무기로 영향력을 발휘해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금력의 위력은 비슷한거 같다. 당시는 완전한 국가의  형태가 자리잡히기 전이라 교황이나 지방 영주들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용병을 고용하여 반대편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자기의 세력을 형성했다. 푸거는 평민출신이었으나  광산업과 금융업에 진출해 매년 7% 이상의 성장을 거듭해 당시 유럽 전체 부의 2%정도의 재력을 소유했다고 한다. 역사책에 기록된 최초의 백만장자다.  푸거의 고리대금업은  농민들의 반감을 사게 되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규모 충돌인 농민전쟁을 겪게 되고,  면죄부 판매 등 카톨릭의 타락을 성토하는  루터에 의해  촉발된 종교개혁은  유럽 기독교 세계를 양분하는 지각변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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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푸거는 '어마어마한 부의 획득' 못지않게 인도주의 사업으로 더 유명하다. 아우크수부르크의 공동주택인 '푸거라이' 건설이다. 500년 전에 건설된 이 주택단지는 지금도 운영되어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의 사업이 역사에 미친 영향은 군주, 혁명가, 예언자, 시인을 초월하여 그의 방식은 500년 동안 자본주의의 토대를 닦았다. 그에게서는 현대적 성격도 찾아볼 수 있다.그는 본질적으로 공격적인 사업가였고 최대한 많은 돈을 벌고자 했으며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최대의 기회를 추구했고 정치인에게 환심을 샀으며 자신에게 유리하게 돈으로 규정을 바꾸었고, 변호사와 회계사를 거느렸으며 정보를 수집해 활용했다. 현재의 금융체제와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임에 틀림없다.

 푸거는 한 사람이 엄청난 위력을 떨칠 수 있는 독특한 시대를 살았다. 오늘날도 정부는 여전히 수입을 초과해 지출한다. 하지만 이제는 개인에게서 자금을 마련하지 않고 국채를 발행하거나 보험회사나 연금기금 등에서 차입한다. 이렇게 하면 개인이 자기 재산을 거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을 때의 위험을 대출기관이 전 국민과 공유하게 된다. 세상이 더 이상  푸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납세자에 종신보험과 연금보험의 가입자로서 모두 어떤 의미에서 푸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단속사회 - 책속의 생각

 말이 힘을 잃은 시대다. 말같지 않은 말이 넘쳐나고 또, 힘 있는 말들이 너무 쉽게 배신의 말로 바뀜을 경험한 우리들은 자연스레 입을 닫고 귀를 닫는 사회를  살고 있다. 이제 사람들과 유대와 교류는 같거나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 사이에서만 활발하다. 간혹 등장하는 다름과 차이에 대해서는 '그의 취향일 뿐' 이라는 말로 무관심한 듯 존중하는 제스처로 해결한다. 이로써 자신의 고통에서 자신의 주변 혹은 사회의 모순이나 고통 등, 무엇인가 '자기'를 넘어서는 것을 발견하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이야기를 나누며 '곁'을 만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서로 참조하며 배우는 '곁의 언어'가 사라질수록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공적인 이슈로 바꾸는 역량 역시 쇠퇴한다.  또한 낯설고 바른 것과의 부딪침과 만남을 통해서 일어나는 사람의 성장 역시 불가능해진다.

다름과 차이를 차단하게 되면서, 서로의 경험을 참조하며 나누는 배움과 성장은 불가능해진 사회, 곁을 만드는 언어는 소멸해버리고 편만을 강요하는 사회, 책임은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하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의 특징으로 저자는 단속(斷續)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같고 비슷한 것에는 끊임없이 접속해 있으면서 타인의 고통같이 조금이라도 나와 다른 것은 철저히 차단하고 외면하며 개입하지 않으려 하는 상태_동일성에만 머무르며 자기 삶의 연속성마저 끊어져 버린_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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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단속'이란 말로 설명하는 우리 삶의 형식은 다음과 같다.
1. 단속은 낯선 것(타자)과의 만남의 단절이다. 이는 동질성과 유사성에 기반을  둔 '빗장 건 사회'의 경향으로 이질적인 타자와의 접촉을 위험시하며 그들과 거리를 둔 상태에서 '구경'만 하려고 한다.
2. 공적인 것과의 단속이다. 타자와의 만남은 우리에게 나와는 다른 존재, 나와는 다른 의견, 즉 異見이 존재하며 그 이견들 속에서 내 견해를 갖고 이를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스스로를 공적이 존재로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람들은 이를 부담스러워 한다.
3. 의견을 아예 제시하지 않거나 불가피한 경우에만 최소한으로 드러내기 위해 자기검열 혹은 스스로를 단속하는 경향으로서의 단속이다. 공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그 공간(공동체)에서 자신이 타자로 분류되는 상황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타자에게 자신의 낯섦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감추고 입을 다물거나 혹은 검열된 형태로 제시해야 한다. 당연히 침묵과 순응이 지배적인 태도가 된다.
4. 이런 결과로 나타나는 '연속의 반대'로서의 단속이다. 개인이든 사회든 그 존재 가치는 연속성을 지닐 때 이다. 내가 치른 경험이 다른 누군가의 참조점이 되고 다른 누군가의 경험이 나의 참고가 될 때 서로에게 기댈 수 있고 배울 수 있으며 개인이나 사회가 발전해 간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하나의 연속성을 가진 서사로 이어갈 때, 이것을 성장이라 할 수 있으며 나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 전송되고 내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내용은 이해가 되지만 정리가 힘든 책이다.
문제는 제시했지만 해법이 좀 막연하달까??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와 세이렌의 말걸기도 그렇고~~

1 주일 - 일상 속에서

6월 12일, 와이프 생일이라 잽싸게 취소한 빈 자리를 찾아 이연복세프의 연희동 '木蘭' 중식당을 다녀왔다. 말로만 듣던 동파육과 멘보샤를 먹어보았다.  
멘보샤_새우를 으깨어 샌드위치처럼 가운데 넣고 튀긴건데 정말 부드럽고 고소했다. 
14~15일, 1년에 두 번 모이는 강서지구 동기모임을 강화도 창후리로 다녀왔다. 신화 유스호스텔에 묵었는데 짚라인과 수영장  등 시설이 훌륭했다. 교동도 다리가 놓이는 바람에 찬밥이 된 동네인데 청소년 수련원 센터를 겸한 관광지구로 리모델링 하는 중이었다.
나이 들어가는거 무색하게 족구게임 정말 열나게들 한다. 공이 탱탱볼로 바뀌어 헤딩의 부담이 덜했다.  3:2로 승리하다.ㅋ
방 세개짜리 널널한 방을 저렴하게 임대했다. 수련활동시 인솔교사 숙소인거 같았다.
족구게임 5개 치르고 외포리로 이동해서  회를 거나하게 먹엇다. 외포리도 석모도 다리가 놓이고 나서 완전 찬밥이다.
이튿날 아침, 숙소 뒤편의 산을 올랐따. 트레킹 코스가 잘 되어 있었다. 수영장과 공연장 등을 공사중이었다.
창후항, 교동도 다리가 놓이고 나서 거의 개점 휴업상태다.
창후항 옆의 무태돈대를 구경했다.
아점을 온수리로 들어와 반선식당 꽃게 해물탕으로 속을 채우고 해산하다. 1박2일 재미있게 놀고 잘 먹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 책속의 생각

 이 책은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 후 전반적인 우리 사회와 삶의 문제점들을 총체적으로 재점검 해보는 차원에서 집필한 세상을 꿰듫는 50가지 이론 속편으로 전작 '감정독재' 2편에 해당된다. 우리는 일상적 삶과 관련된 수많은 의문에 대해서 모두 그 이유를 알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그런 확신은 각종 심리적 편향과 오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확신이 사실에 근접한 것일지도 모든 사람의 생각은 다 다르다. 생각이 다를 땐 상호 소통을 통해 차이를 줄여나가는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겠지만  이미 어떤 확신으로 무장한 사람과의 소통은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처럼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극심한 상황에선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확신이다. 확신은 나의 확신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잔인한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나의 확신과 너의확신이 만나면 '충돌'이외에 답이 없다., 나는 왜 확신하며 너는 왜 확신하는가? 스스로 왜?라는 물음에 답해 보면 충돌은 피할 수 없을망정 그 강도를 낮출 수 있겠지만 우리는 한사코 '왜?'를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확신에 대한 검증이나 도전이 싫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작 '감정 독재'에 이어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에 대해 '확신'보다는 '지식'에 근거한 소통을 시도해 보자는 뜻에서 기술한 내용이다. 우리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그 어떤 '확신''에서 벗어나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을 진솔하게 관찰하고 음미하는 재미와 의미를 누려보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을 만들어보자는 시도라고 집필의도를 소개하고 있다.

감정독재 - 책속의 생각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강 준 만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지만 일상적 삶에서는 늘 감정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오죽하면 '법보다 주먹이 우선' 말이 있겟는가?
감정은 '행동하려는 충동'이다. 일찌기 데이비드 흄은 인간은 동정, 사랑, 공포, 증오 등에 더 영향을 받는다며 이성을 '감정의 노예'라고 말했다. 한편 베블린은 인간은 합리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효용을 계산해 행동하기보다는 탐욕, 공포, 순응 등 근본적인 심리적 힘에 의한 지배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이성을 전제로 하는 모든 학문은 종교이거나 유사종교의 혐의가 다분하다. 이제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rational being)라기보다는 '합리화 하는존재(rationalizing being) 라는걸 상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특히 정치적 판단을 할  때 인간의 뇌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이 작동한다. 감정적 판단은 사전에 가진 신념이나 감정 중심으로 이루어지므로 여러 정보를  분석해야 하는 이성적 판단보다 속도가 빠르다. 감정적 판단이 이성적 판단보다 발달한 것은 생존과 번영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해 온 결과라는 것이다.

 속도가 생명인 인터넷과 SNS로 대변되는 커뮤니케이션 혁명의 결과로 과거보다 더욱 견고한 '감정 독재' 체제하에 우리는 살게 되었다. 속도는 감정을 요구하고 감정은 속도에 부응함으로써 이성이 설 자리는 더욱 축소되어 간다. 최근 '감정 노동'과 '감정 자본주의'가 주요이슈로 등장하게 된 것도 이런 변화와 무관치 않다. '감정 독재'가 심화되면서 자본이 감정을 활용해야 하는 '감정 식민지'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TV나 미디어를 접하는 순간 우리는 충실한 '감정 식민지의 신민'으로 자리매김 한다.

 이 책은 개인적 영역이나 사회적 행동의 기저에서 작용하는 '감정 독재'에 대한 50개의 '왜?'라는  질문에 대한 관련 이론과 해답이다. 우리는 '감정 식민지화'를 인정하고 향유하면서도 이성의 끈은 놓지 않은 채, 나를 둘러싼 바깥 세계를 향해선 이성에 대한 호소를 멈추지 않는다. 나는 '감정 독재'를 껴안을 망정 너는 '이성 독재'를 지향해야 한다는 식이다. 이제는 좀 달리 생각해봐야 한다. 저자는 '감정 독재'와 싸우는 법은 '타협하는 법'이라고 본다.  이성의 적이 아니라 동료로써 감정을 바라보는 시각으을 갖고 타협이 가능한 것들을 긍정적으로 살려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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